"무희? 스파이? 숨겨진 그녀의 사생활이 궁금하지 않나요?"<마타하리> 옥주현

누군가의꿈이될님 | 2016.03.20 17:29 | 조회 326



마타하리는 실존했던 무희다. 물랑루즈에서 파격적인 춤으로 유럽의 정상들을 사로잡았고, 일반인들은 감히 범접할 엄두조차 못냈던 '꿈 속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총살로 세상을 떴다. 전쟁 중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혐의다. 그녀에 대해 확언할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죽음 뒤에 남겨진 음모와 사랑의 상흔이 미스터리로 가득 찬 그녀의 삶을 추측하게 할 뿐.

그런 마타하리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감각적 무대로 그린 뮤지컬 <마타하리>가 4년 간의 산고 끝에 곧 세상의 빛을 볼 참이다. 브로드웨이 정상의 제작진들과 국내 최고의 캐스팅.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는 화려한 수식어 가운데에는 주인공 '마타하리' 역을 맡은 옥주현이 있다. 부담이고 기대고, 그렇지만 단연 독보적인 작품이 될 것을, 느끼고 또 되뇌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Q 얼마 전 제작발표회에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옥주현을 위해 만들었다'고 <마타하리>의 넘버들을 이야기했어요.
되게 부담스러워요, 미치겠어요. (웃음) 민망하기도 하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가장 크죠. 저를 위해 곡을 써준다는 사람이 있고, 제프 칼훈(<마타하리> 연출가)도 전부터 프랭크에게 저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고 하고. 그래서 저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전 어려서부터 어떤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좀 산만해 보이죠. 그래서 연출님들이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정말 쟤가 집중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말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고요. 사실 제프 연출도 초반에 되게 마음 졸여 했어요.

어떤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스스로에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사람이 저거든요. 그래서 뭘 제시하면 즉흥적으로 잘 못하겠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저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내가 안 보여주고 싶어서 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걸 정제하는 시간과 시뮬레이션 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 정말 압박을 받고 있는 거죠.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고, 조금 전까지 생각을 하다가 잠깐 눈 감았다 떴는데 아침인 것 같고. 처음 같이 일하는 스텝들도 "일부러 뭘 안 보여주다가 런 할 때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나중에 보여주는 거야?" 하는데, 전 원래 그런 패턴인 거에요. 주변에 그렇게 티를 내는 사람도 아니라 제 오랜 친구들도 되게 신기하데요. 공연 준비하는 기간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는데 공연 가서 보면 언제 저걸 다 준비했을까, 싶다고요.

Q. 그렇게 프랭크 와일드혼이 쓴 <마타하리> 넘버들의 특징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아름답고 좋아요, 잘 부르면. (웃음) 프랭크는 이야기 속에서 자유로워지기가 참 까다로운 멜로디 라인을 쓰는 작곡가인데, 옥타브와 옥타브 사이를 짧은 시간에 넘나들게 쓰는 특징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힘들지 않게 정말 자유자재로 편안하게 표현하는, 그걸 연습하는 기간 동안 '해도 해도 어렵구나', 만 번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근데 정말 좋아요. 음악을 통해 그 장면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어요.


Q.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은 그간 고민했던 것들을 스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단계일까요?
지금은 '대본과 연출이 의도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이렇게 입었다'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Q. '입었다'라는 표현이 새삼 와 닿네요. 배우는 어떤 인물을 자신에게 입혀 관객에게 보여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마타하리 앞에 붙는 단골 수식어 '매혹적인, 치명적으로 아름다운'을 어떻게 '입어' 보여줄까가 궁금해요.
마타하리를 두고 섹시하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에는 분명 아슬아슬한 게 있을 거에요. 그런데 그런 아슬함이 '내가 그렇게 할거야'라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마타하리는 스파이 제안을 받고 그 이후에 어떤 기막힌 일들이 와도 이 모든 것들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게 의연하게, 여유있게 볼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이 섹시미를 풍기게 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이 여자는 과거에 더한 일도 겪었기 때문에 또 다른 어마한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도 남다를 뿐더러 그 자체가 매력적인 거죠. 그녀의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여유, 거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무대에서 보실 수 있을 거에요.

Q. 마타하리는 실존했던 무희죠. 작품의 서두에서 매혹적인 춤 장면이 나온다고 알고 있어요.
'사원의 춤'이라는 3분 정도의 씬이 있어요. 이렇게 노래 안 하고 춤만 추는 건 정말 오랜만, 아니 처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긴장도 많이 되고, 제가 추던 춤도 아니고요. 얇은 원단 하나로 무언가를 상징하는 춤이거든요. 작은 폭포, 큰 폭포, 뱀 같이 동작 하나하나에 이름이 있어요. 그것을 형상화하기 위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고요. 나름 유연하지 않은 편은 아닌데, 더 아름다운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는 점도 있고요.

그런데 물랑루즈 때 이야기이긴 하나 춤, 쇼에 대한 장면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사실 걱정하기도 했어요. 춤추는 씬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보여질까.

지금 준비 막바지라 런쓰루라고 공연처럼 쭉 연습해 보거든요. 마타하리가 얼마나 무대 위에서 아름다웠고 매혹적이었고 어떤 춤을 췄는지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넘버를 통해 힘을 꽉 줬고, 그 외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 말고 이 사람의 삶에 대해 작품은 들여다 보고 있어요. 거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니까 '왜 춤은 안 나와?' 이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마타하리> 무대가 어느 틈 하나 지루한 부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아요. 대도구 없이, 조명 없이 형광불 아래서 연습하고 있는데도 정말 재밌어요.


Q. 마타하리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혹은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모습에 작품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군요.
마타하리란 사람이 여성 최초의 스파이, 그 여자지? 그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겠죠. 그런데 정확히 그녀가 어떻게 무얼 했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그렇게 여러가지 일화가 쌓이고 회자되었던 여자인데 그런 여자의 사랑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을 그 사람의 커리어로서 대하지만 한 편으로 개인적인 일들을 궁금해 하잖아요.

그녀는 삼촌에게 강간당했고, 남편은 하녀를 강간했고, 그래서 그 하녀의 남편이 복수로 마타하리의 딸을 죽였고. 정말 남자라는 건 그녀의 인생에서 지긋지긋한, 보고 싶지도 않은 존재인 거에요. 사랑은 믿지 않아, 사랑이 어떤 건지도 몰라, 난 나를 지키면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감사해. 그런 그녀에게 어떤 상대가 나타난 거죠.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하늘을 날며 목숨을 거는 남자. 그 어떤 자유분방한,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행복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그렇게 호기심에서 출발해 사랑까지 가게 되었는데 나중에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작품이 마타하리가 라두에게 스파이 제안을 받고 나서부터 9개월 동안 있었던 얘기라고 하더라고요. 9개월 후에 총살을 당하니까.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마타하리는 후회하지 않아요. 내가 맛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을 상대방 역시 목숨 걸고 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 엔딩곡이 마이너(단조)가 아니라 메이저(장조)에요. 처음에 가사 없이 들었을 땐 너무 분위기가 밝은 거 아닌가,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곡이 너무 세련된 거죠. 눈물을 쥐어 짜려고 사람을 막 찌르지 않아요. 전반적으로 곡 세팅이 너무 세련됐어요.

Q. 제작발표회 때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스텝분들이 너무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연습 없는 날 응원차 갔었어요. 그런데 정말 숙연해지는 거에요. 디테일한 작업 하나하나를 위한 이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정말 틈틈이 느낄 수 있었어요. 대충, 그럴싸해 보이게,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정말 장관이었어요, 그 풍경이. 너무 감동적이고.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연습해도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무대 위에서 이런 기술적인 것이 가미된다면 진짜 대박이겠다, 이런 생각하면 제 존재가 작아지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들죠.


Q. 뮤지컬 출연할 때마다 직접 분장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잖아요. 이번에도 직접 하시나요?
네. 프로덕션에서도 좋아해요. (웃음) (분장 컨셉 등도 생각해야 하겠군요) 그런데 그게 제게 스트레스가 아니에요. 요즘 인스타그램에도 메이크업 관련 사진 많이 올라오잖아요. 그런 거 캡쳐해 둔 게 되게 많아요. 잡지를 봐도 제가 좋아하는 화장 소재 페이지 잘 보고. 보면서, '댄버스에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 하는 걸 진짜 댄버스 할 때 한 것도 있고요. 이젠 그렇게 한 것에서 분장팀도 팁을 얻어요. (웃음)

처음엔 그분들도 제가 메이크업하는 것에 좀 자존심 상해 하셨는데, '우릴 못 믿어?' (웃음) 그런데 나중에는 인정해 주셨어요. "네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구나, 근데 잘해."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항상 공연 전 테크(테크니컬 리허설, 공연의 기술적인 부분들을 점검하는 리허설) 때 조명 세팅하는 걸 보고 메이크업 색깔을 정해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건 <마타하리> 뮤직비디오 찍을 때 상징적인 의미라고 해서 입술을 빨갛게 했었는데 그게 연기하는 동안 너무 관객들의 시선을 뺏지 않을까, 하는 거에요. 그래서 무대 올라가서 조명 받고 입을 크게 움직이는 노래를 해 보고 모니터 하려고요. '사원의 춤' 할 때는 노래를 안 하니까, 그때는 입술은 아주 빨갛게 하고 다른 부분은 톤 다운을 하고요. 이런 것들은 실제 리허설 때 무대 올라가서 확인할 생각이에요.

Q 얼마 전 핑클 멤버인 이진씨 결혼식에서도 직접 신부와 신부 어머니 화장을 해주셨어요.
결혼식 때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신부들 열 명 중 열이 다 거기에 만족하진 않을 거에요. 왜냐면 그 사람의 얼굴을 긴 시간 봐온 사람이라야 이 사람이 어디가 짝짝이인지, 어떻게 해야 예쁜 지 아니까요. 제가 진이씨 메이크업 하고 나서 어머니가 "넌 진이가 어떨 때 제일 예쁜지 잘 아는 구나." 하셨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그렇게 심장 떨려 하지 않고 저한테 메이크업을 맡길 수 있지 않았나 해요.

Q. 언제부터 메이크업 쪽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핑클 '루비' 할 때부터 제가 메이크업을 했거든요. 그 전엔 샵에 가는 것도 아니라 아카데미 수료하신 분들이 오셔서 색칠 공부하듯 한 톤으로 발라서 하는 눈 화장, 이렇게 15분이면 끝났어요. 나는 가뜩이나 안 예쁜데 더 호박 같은 거예요. (웃음)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난 아이라인보다도 섀도우로 음영을 주는 게 더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관심이 커졌죠. 만약 제가 별거 안 해도 예뻤던 타입이었다면 정말 관심 없었을 수도 있어요. 메이크업 제품도 많이 사서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실용적으로 쓰는 편이에요. 시즌 신상, 이런 거 안 사요.


Q. 핑클 멤버들이 점차 유부녀 대열에 합류하고 있어요. 일과 사랑, 결혼에 대해 생각이 더욱 많아지는 시기일 것 같아요.
20대 때는 결혼이 정말 막연한 '꿈'이었다면, 30대에는 현실이더라고요. 꿈에서 현실로 들어간 사람들을 보면 '아,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싶어요. 바쁘게 연습하고 공연하고 집에 들어가면 전 청소도 잘 안 하는데, 같이 사는 사람이 그걸 본다면 정말 좋았고 예뻤고, 그런 건 다 없어지고(웃음). 난 그러고 살고 싶진 않은 거에요. 그 행복도 너무 좋겠지만, 지금 내가 해서 행복한 거, 지금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 같아요.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이제 조금 나를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과정 중에 지금이 제게 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고요. 또 한 번 엄청난 상대와 깊은 사랑에 빠진 거죠. 이 연애에 굉장히 충실해야 하는 것이에요. 되게 식상한 멘트지만, 일과 사랑에 빠졌다는 거, 진짜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 같아요.

Q. 올 초 뮤지컬 데뷔 10주년 단독 콘서트도 열었어요.
정말 콘서트 열어주신 대표님께 가장 고맙고. (웃음) 저도 되게 걱정이 많았거든요. 과연 2시간 동안 혼자서 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누군가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준다는 건 굉장히 큰 부분이 되는 거에요. 믿고 그것에 대해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시동은 걸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같이 출발했기 때문에 나아가야 하고요.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이, 두 시간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리고 하면서 '내가 다음에 어떤 것을 더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내가 무대에서 보여줬던 캐릭터 더하기 앞으로 맡을 수 없는, 남자 역할 같은 것들을 했을 때 반응도 궁금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 외에도 상상이 되는 게 더 많아진 거에요. 그러면 또 언젠가 이런 상상을 현실로 할 날이 있겠죠.

Q.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3~4년이 지났을 때도 "잘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어요. 10년을 채운 지금, 뮤지컬 배우 옥주현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작품을 선택할 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요. 저도 오래 하다 보니까 내가 이 사람과 호흡을 맞추면 이런 색 이상의 색이 나올 것 같아, 그런 느낌이 있죠. '그런 상대를 만나서 그 작품을 한다면?'이라고 상상하고 있는 작품이 이 다음 작품이에요. '저 사람과 만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 그런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꼭 하고 말 거야, 이런 생각은 사실 없어요. 그런 작품을 해도 상대와 합이 정말 안 맞을 수도 있고 목소리 합이 안 맞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 작품을 했다'는 커리어는 남겠지만 하는 동안에는 그리 즐겁지 않거든요. 그런 부분에 저는 굉장히 본능적이에요. 이걸 행동으로 하는 순간 그 합이 맞았을 때 오는 짜릿함, 그 순간의 전율이, 그 즐거움이 제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영상: 김혜진(genie228@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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