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아의 만나고 싶은 사람] 배우만 보였던 미치광이, 그리고 아버지 박근형

누군가의꿈이될님 | 2016.07.10 11:39 | 조회 78



박근형 선생님을 뵙기 전에 국립극단 제작의 연극 <아버지> 연습을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앞에 선 여자에게 파자마를 갈아입겠다고 떼를 쓰던 한 노인은, 갑자기 어차피 밤이 되면 다시 입을 거 뭐 하러 옷을 갈아입느냐고 고집을 피우더군요. 네, 그 남자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이 작품의 주인공 앙드레입니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가 자신의 관점에서 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부분적으로 소멸되고, 엉키고, 잘못 재생된 치매 환자들의 기억들처럼 작품은 여느 연극과 달리 전개에 두서가 없고, 또 같은 장면이 변주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보는 세상과 심경을 토로하는 앙드레의 몸짓은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인간의 절규, 그 자체였지요.
 
장면 연습 후 "잠시 쉬고 갈까요?"하는 연출에게 "이건 마저 하고, 할 건 하고"라는 말을 주고 쉬는 시간에도 상대 배우와 대사를 맞춰보는 이. 바로 주인공 앙드레 역을 맡은 박근형 선생님이었습니다. 연습실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얼굴 주름마다 살아있는 저 감정들. 과거 이순재, 신구 선생님을 뵈었을 때에도 느꼈던 힘이 이번에도 생생했습니다. 열정, 의욕, 건강, 총명이 있어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탁월하게 배우로 활동하시는 건지, 아니면 배우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으셨기에 무대를 끌고 나갈 힘을 잃지 않으신 건지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박근형 선생님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라고 답하시곤 너털 웃음을 지으시더군요. 연극에 미쳐서, 좋고 행복하니까 배우만 좇아 오셨다는 50년 연기 인생을 조금 엿듣고 왔습니다.
 
치매를 가진 아버지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독특한 구성 매력적


Q. <아버지> 대본을 읽어보았는데, 주인공인 아버지 앙드레의 분량이 거의 대부분이더라고요. 기승전결로 구성된 작품도 아니라 대본 숙지도 만만치 않겠구나, 싶었어요.
처음엔 아주 난해했죠. 본 역할이 있고 또 남자, 여자도 등장하고, 혼돈이 되었는데 '앙드레가 보는 시선'이라는 걸 가지고 있고, 그 시선에 의해서 이런 인물, 저런 인물이 표현되는 거다, 라는 걸 가지고 있으면 되요. 합독하는 동안 쭉 토론하다 보니까 선명해지기 시작했고, 일치가 되면서 극이 어느 방향인지를 알게 되고.
 
이걸 만드는 연출이 힘이 들지, 배우가 이 작품을 하기엔 별로 어렵진 않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 사람(앙드레)의 기억과 현실이 마주치는 부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에게 변화가 있거든요. 어른에서 아무렇게 행동하는 사람, 그렇게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그 순서를 극작법으로 바꿔 놓은 것 뿐이죠. 도중에 극이 시작할 것 같은데 끝나고 또 나중에 저 뒤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 건 작가가 노린 것이죠.
 
Q.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지만 국경이 작품을 받아들이는데 장벽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제 고령화 사회, 치매는 전세계의 이슈니까요.
사람에 있어서 마지막 부분이잖아요. 아무리 인종이 달라도 결국 죽음에 이르는 길이 편안하지 못하고 이런 어려운 것들이 있다는 거, 생각해 볼 만 하고 관심이 많죠.
 
Q. 치매를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아버지>처럼 치매를 앓는 당사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그린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치매에 관한 극에 여러 번 출연해 봤는데, 이런 시각으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하지만 어차피 사람 이야기, 사람 내부의 것을 꺼낸다는 건 같죠. 내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 내 생각의 이중성, 이런 것들이 부딪혀서 이 연극이 되는 거죠. 다른 연극은 줄거리가 있어서 메시지를 안고 쭉 가는데, 이 연극은 아버지 시각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그런 기법으로 어떤 상황의 시차들을 막 뒤섞어 놓고 있으니까,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Q. 작품을 풀어내는 시점이 '치매를 앓는 당사자'여서 그런지, 치매나 노인 문제를 담은 다른 작품을 보면서는 '안타깝다, 슬프다, 우리 부모님들도 저렇게 되시면 어쩌지'와 같은 감정이었는데, <아버지> 대본을 보면서는 '너무 답답하다'는 마음이 컸어요. 앙드레의 시선에 이입이 된 것이겠죠.
맞아요. 본인이야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실제로 겪고 있는 인물은 (자기가 보는 것이) 자기만 알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게 좀 특이해요. 앙드레라는 인물이 과거와 현실이 맞붙는 시간은 아주 짧거든요. 그 딱 마주치는 부분이 아주 대단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보는 사람들에게 이 연극은 희극적인 면이 더 많아요. 그런데 실제로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비극적인 거죠. 본인은 비극인 줄도 모르고 하는 행동이 보는 이에겐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이해도 안 되고. 아주 난해해요.

모든 것은 대본 안에
끊임없이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인물 창조


Q. 배우들이 극 중 인물을 형상화할 때 자신의 실제 모습과 경험에서 힌트를 많이 얻는다고도 하던데요.

그건 자기 역할의 주요환경이라는 게 있어서 거기에만 국한되지, 나머지 부분은 책(대본) 안에서 자기의 상상력으로 채워야죠. 실제를 자꾸 빌려다 쓰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저 역시 책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해요. 그 안에 다 있으니까. 그 안에서 얼마든지 토론하고 가지를 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빌려다 쓰는 건 별로 많지 않다고 봐요.
 
Q. 뉴욕 공연에서 이 작품의 주연으로 선 배우가 최근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전에 프랑스에서는 몰리에르상 작품상을 수상했고요. 부담이 좀 되시나요?
부담은 별로 없어요. 문화가 좀 다르겠지만 책 안에 있는 거니까 큰 변화는 없을 것이고. 동서양 구분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사람의 심성이라는 건 비슷하다고 봐요. 사람 얘기하는 공통언어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다만 표현방법이 이렇게 딱 정해진, 마땅한 방법은 없다는 거죠. 안 맞으면 실패하는 거고, 맞으면 성공하는 건데, 저도 모르겠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시고 어떻게 얘길 하실지. 이런 드라마, 이런 연극이 사회적으로 공론이 되어서 우리나라 치매나 국민복지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 공론이 되어서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Q. 배우, 가수로 활동하는 아드님(윤상훈)이 이 작품을 뉴욕에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또 두 분이 함께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시는 것 같고요. 작품이나 연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많이 나누실 것 같아요.
그 공연 어떻더냐, 괜찮더냐, 물어본 적도 없고. 물어보면 안 되죠. "재밌게 봤냐?" 그러니까 재밌게 봤대요. 저도 얘기 안 하고 나도 얘기 안 해요. 그건(얘기하는 건) 서로가 큰 실례죠.
 
공연은 자주 같이 보러 다녀요. 요즘 연극 보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예전엔 각 대학에 철학과도 있고 여러 과목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점점 이게 줄어들고 없어지면서 인간성 회복이 점점 말살되고 (시대에) 영합하는 거에요. 우리 젊은이들이 연극하는 걸 여러 번 가서 보면, 마치 같은 작품 안에서 각자 경연대회 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어느 한 메시지를 향해서 같이 가는, 그런 모습이 참 부족해요. 그리고 형식을 너무 좋아하고.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외형적인 것, 보기 좋고 접촉하기 쉽고 빨리 가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손님(관객)이 북적북적 늘었죠.
                     



그런데, 수십 년 후에 지금 하고 있는 걸 신파라고 배격을 받을 때가 올 거에요. 다시 3시간, 4시간 동안 고전을 두고 '왜 그런가', 인간성을 두고 따져가면서 하는 장면, 공연의 시대가 또 올 거란 말이죠. 그래서 (현 시대의 흐름에) 너무 영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역할 창조라고 하지, 캐릭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라는 건 상업적인 거에요. 배우는 예술가죠. 인물 하나를 형상화하는데 자기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표해내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게 예술행위죠.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설정해야 될 때가 된 거에요.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형태들은 200년 밖에 안된, 전부 미국에서 들어온 건데, 우리는 5천년 역사를 갖고 있고 또 한류도 세계적으로 환영 받고 있잖아요. 뭐가 부족해요. 우리도 우리 것을 하면 되요. 새로운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내야죠.

연극 바람을 맞아서
좋아하는 걸 미친듯 쫓아다닌 것이 지금까지


Q. 전북 정읍 출생으로 알고 있는데 학교는 휘문고, 중앙대학교 연영과를 졸업하셨습니다. 그 시절에 서울 유학, 게다가 연극 전공 진학은 흔한 경우는 아니잖아요. 당시 집안이 좀 사셨나 봐요. (웃음)

아하하하. 밥술은 먹었다고 해요. 아버님이 저를 귀여워하셔서 다른 아들, 딸들은 안 보내다가 저를 최초로 서울로 보냈죠.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하숙만 11년을 했나?
 
저희 학교 다닐 땐 과목이 여러가지 있어서 자기 적성을 찾는데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음악하는 사람, 미술하는 사람이 많이 번져 나왔죠. 저도 바람이 든 거죠. 시골에서 유학 와서 좋은 학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다가 연극 바람을 맞아서, 그 연극이 좋아 그 쪽으로 방향이 달라진 거죠. 그게 그렇게 좋아서 쫓아다니고 그랬어요. 자기가 좋아한다는 걸 하는 거, 세상에 그것처럼 행복한 게 어디 있어요? 저는 지금도 제가 나이 먹어서도 이걸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자다가도 웃을 일이에요. 아무리 상상을 하고 그 역할을 해도 뭔가 부족하고, 부족하고. 맨날 그래요. 그런 도전에서 오는 기쁨. 가장 비참하고 어려울 때 (배우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나이 먹어서 뒤 돌아보니까 그게 꽃이었어요, 제 인생의.
 
Q. 이른 나이에 공채 탤런트로 뽑히기도 하셨고요.
1963년도에.(만 23세) 연극하는 게 너무 배가 고프고 힘들고. 그래서 이 난국을 어떻게 달래나, 현대적인 문명이 들어왔다는데, 영상이 들어왔다는데 안 할 이유가 없죠. 그래서 갔던 거고.
 
그런데 가서 초반엔 연극과 괴리가 많아서 힘들었어요. 이쪽(TV)은 영화에 가깝고. 이쪽(연극)은 큰 무대에서 큰 동작에, 큰 말로 표현해야 되니까, 그런 게 잘 맞지 않아서. 지금은 시대가 많이 좋아져서 연극이나 영화나 똑같더라고요. 똑같아졌다면, 연극이 좀 더 섬세해야죠, 모체니까.
 



Q. 국립극단엔 공채 탤런트가 되신 이후에 들어오셨죠?
국립극단에선 1년에 공연을 두 반 밖에 안 해서 많이 하진 않았지만, 그 외 동인제 단체들, 상업극이 막 되기 이전의 작품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많이 했죠. 저 같은 경우는 욕심이 나서 2년 동안은 1년에 한 열 작품 정도 했었어요. 40일 연습하고 일주일, 아님 닷새 공연하는데 겹치기도 많이 했고. 거기서 얻은 게 많죠. 인상주의, 표현주의, 뭐 여러 작품을 많이 만났으니까.
 
Q. 어떤 욕심이 그렇게 나셨나요?
미치광이죠. 그것밖에 안 보이는 거에요, 열정이 많아서. 뭔가 내가 꼭 하고 싶은데 이게 안 되니까 자꾸 하는 거죠. 좋아하기도 했고, 표현해내고 그런 게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 너무 고통스럽고 가난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게 나한테 행복을 줬구나, 싶은 거죠.
 
Q. 1968년에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셨죠.
연극을 포기하고 고향에 6개월 간 내려가 있었어요. 그렇게 내려간 지 두 달째인가, 잘 아는 연출이 엽서를 보내셨더라고요. 한 달 만 와서 연극하고 가라고. 그걸 밤새 고민하다가, 나 혼자 그 선생 댁에 기숙하고 같이 다니면서 한 연극이 동아연극상을 받은 거에요. <실과 바늘의 악장>이라고 이근삼 교수 작이었어요.
 
그러고 가려고 하니까 여기서 붙잡고 저기서 붙잡고, 한 작품 만 더 하고 가라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또 주저앉게 됐죠. 이왕이면 테레비도 가보자, 해서 TBC에도 있었고, 그러다 MBC 창사해서 거기도 가고. 그런데 거기서도 오래 못 있었어요. 프리랜서 선언하는 바람에. 맨날 이상한 거, 이것저것 시키는데, 작품 좋은 거 해야 된다고 뛰쳐나와서. (웃음) 그래서 3개 방송국의 미움을 다 받았죠.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와 만나서 작품을 하면, 그게 다 성공해요. 그러니까 꼭 나를 부르는 거에요. 이쪽 방송가면 저쪽 방송이 자꾸 끊어 내고. 그런데 연극상 이후 텔레비전에선 상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요. 프리랜서를 선언했기 때문에 자국 탤런트들 보호한다고. 텔레비전 시작한 지 35년 만에 상을 탔죠.

Q. 그 상이 1997년 SBS 연기대상 대상이죠. 당시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면 배우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더라고요. 아까는 "좋아하는 일이라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잖아요.
진짜 그랬어요. 이렇게 좋고 행복한데 나보고 다시 태어나면 또 배우하겠느냐, 이 어려운 짓을 또 왜 해요. 이 행복을 누가 보장해줘요. 언제 어떻게 될 지 어떻게 알아. 진짜 못해. 머리 아프고 맨날 남과 경쟁해야 하고, 새로운 거 찾아 다녀야 하고. 즐거운 만큼 고통스럽다, 그렇게 봐야죠. 자식이 배우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세월이 달라져서 자기들이 하고 싶다고 하고 적성에 맞다고 하니까 내가 말릴 수 있나요? 난 못 말리죠. 우리 아버지가 날 못 말렸듯이. 하라 마라 싸울 게 없어요. 본인이 느낄 때까지 그냥 있어야죠.
 
알고 보면 '박씨 아저씨', 외모 덕에 남다른 역 많이 맡아
"아내가 공주가 됐어요"


Q. 매체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배역을 주로 맞으셨는데, 얼마 전 <꽃보다 할배>에서는 누구보다 아내에게 자상한 '로맨스 박'으로 나오셔서 놀랐어요. 무엇이 진정한 선생님의 모습일까, 하고요. (웃음)
저는 아버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는데, 아버님이 법 없이 사실 수 있는 양반이셨어요. 어려서부터 그걸 보고 자랐으니, 남 불편하게 하는 게 참 싫어요. 내가 참고 말지, 그런 쪽이지. 그리고 서울로 혼자 유학 와서 살다 보니 환경이 폐쇄적이잖아요, 나 혼자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생각 할 겨를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만 쫓아다니게 됐죠.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서 누굴 해코지 한 적도 없고. 그저 열심히 일 했던 거고.
 
그래서 촌놈이에요, 우리 아버지처럼. 촌놈인데 어찌어찌 부모님한테 받은 유산이 형태로 봐서 좀 멋지게 보이고, 그렇게 보이니까 고맙긴 한데 그래서 내가 역할을 좀 특이한 걸 많이 하게 됐죠. 그런데 실제 생활은, 친한 여배우들한테 물어보면 잘 알아요. 나한테 '박씨 아저씨'라고 하거든요. 소탈해요, 심부름도 잘 해주고.
 
집에 전화를 자주 하는 이유도, 집사람이 위암 수술하고 난 뒤에 어떻게 지나는가 막 걱정이 되잖아요. 근데 금년부터 공주가 되는 거에요. (일동 웃음) 뭐든지 자기 손으로 안 하려고 하고. 내가 놀랐죠, 그렇게 활동적이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선언했죠. 가만 보니까 당신이 당신 손으로 뭘 해결을 안 하려고 한다, 뭐든지 앉아 있으면 다 해주는 줄 아니까 안 되겠다. 전화도 한 서, 너 번으로 줄이고, 뭐든지 줄인다, 그렇게 약속했어요. 나는 바쁘게 일하고 그러니까 당신도 당신 생활 하라고. 나 없으면 가만히 있고 나 있으면 같이 가고 그러니까. 그래서 전화도 적게 하려고 참고 있어요. (웃음)
 



Q. 지금도 드라마 출연 중이시고, 쉼 없이 바쁜 와중에도 연극을 꾸준히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너무 좋아해서. 누가 그런 걸(역할) 맡길 때마다 신바람이 나는 거에요, 자꾸. 그 역할에 대해서 계속 다른 생각, 다른 생각을 하고. 그게 그렇게 계속되는 거죠. 배우는 반드시 연극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토론하고, 자꾸 그렇게 인물을 형상화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게 나를 깨트리는 거에요.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인기가 좀 있으면 똑같은 패턴을 계속 하잖아요. 그런데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을 (연극이) 계속 주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이 자꾸 그러는 거에요. 회귀 본능이 있어서 모태처럼 연극으로 자꾸 돌아온다고. 연극만 하면 편안해요. 그렇게 긴 시간 고통스러워도 그냥 좋아요. (웃음) 공연장 가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Q. 어렵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도 '도전'은 어찌 보면 사치로 다가오기도 하거든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 당장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시대니까요.
제가 가끔 그런 얘길 해요. 작가는 자고 나면 글 써야 하고, 운동 선수는 자고 나면 운동해야 하고 배우는 자고 나면 연기해야 한다고. 그런데 연기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잖아요. 계속 관찰하고 상상하고, 그런 훈련들을 계속 꾸준히 해야지, 가만히 있다 하려고 하면 맨날 같은 것만 하죠. 그래서 갖은 생활사, 사회사, 이런 모든 걸 눈으로 들여다보고 거기에 대해 느껴보고 알려고 하고, 그런 것들이 다 자료가 되요, 우리가 연기할 수 있는 자료. 그런 걸 끊임없이 해야 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스타들이 많아서, 잠시 잠깐 막대한 돈을 벌고 잠시 쉬거나, 그 자리를 보전하려고만 애쓰니까 자꾸 파탄이 일어나는 거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들어오든, 들어오지 않든 아무 상관 없어요. 좋으니까 하는 거죠. 돈을 좇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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