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작가 박윤희

김채령님 | 2016.03.29 12:24 | 조회 445

극단 목수에서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박윤희 작가. 이번에 \'전기수\', \'금강산려관\' 두 작품을 연달아  공연한다.  작가가 말하는 두 작품에 대한 내용을 들어보고,  또 작가로서 삶을 들여다 보자.

Q.  ‘전기수’, ‘금강산려관’ 작품을 준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두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A  「전기수」는 실화이면서 허구입니다. 이는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인물 ‘전기수 업복’, ‘소설가 송복홍’, \'병조판서 장붕익‘의 실재 야담을 바탕으로, 고소설 ’사씨남정기‘와 ’조웅전‘의 스토리텔링을 접목시킨 희곡이죠.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어 충격적인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극중의 전기수가 읽어주는 소설이 무대 위에 입체화 되는 다양한 방식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금강산려관」은 희곡「오리사냥」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밤삘로프의 초기작입니다. 단막극이고, 가벼운 해프닝이죠. 이 원작이 쓰여질 당시의 러시아 상황이 현재의 북한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각색을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첫 번째 목적은 ‘웃음’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코미디로 각색이 되었죠.

Q  위의 두 작품의 각각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A「전기수」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한 마디로 ‘사필귀정’입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가게 되어 있는 법’이라는 것이죠. 대부분의 고소설이 그랬듯,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교훈을 던져주는 것이 이 작품의 목표입니다.

한편, 「금강산려관」에서는 ‘소통’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때로는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를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죠. 그렇게 한 번 어긋난 생각이 점차 나비효과처럼 부풀려져,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와 버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시간을 돌려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단 5분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만히 눈을 바라보고, 조용히 귀를 기울여주고, 가슴으로 공감하는 시간, 5분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과연 얼마만큼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 보았습니다. 상대의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한 짧은 시간을 포기하는 대신 평생 짊어져야 할 오해와 불신을 선택하지는 않았는지……. 이 작품을 남북관계로 각색하게 된 것도 오해와 소통 사이에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 땅에서 태어나 형제로 자라온 남과 북이 지금과 같이 서로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어쩌면 60년 전 우리가 무심히 포기해버린 단 5분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Q 두 작품의 집필과정을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A 얼마 전, 인사동에서 우리나라에 몇 안 남은 전기수의 은퇴공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통예술이 계승되고 있는 반면, 전기수라는 연희방식은 그 맥이 끊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전기수’라는 직업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작업이 시작되었죠. 야담과 고소설들을 수집해서 인물을 만들고 그 위에 옷을 입혔는데, 사실 지금의 「전기수」는 초고의 내용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연출이 되신 이돈용 선배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금강산려관」은 원작이 있기 때문에 각색하는 것이 자유롭지는 못했어요. 게다가 코미디를 쓴다는 것은 희곡작업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부담이 컸죠. 코미디에 집중하다보니 작품이 산으로 가기도 하고, 주제의식을 넣다보니 작품이 무거워지기도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래서 희곡작가협회에서 만난 임지현씨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드라마투르그로서 작품의 중심을 잡아주었죠. 덕분에 무사히 작업을 마쳤고, 이제는 배우들에게 바통을 넘겼어요.

Q 본인이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하셨나요?

A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글을 쓰고 그것이 무대에 올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후로 ‘작가’라는 직업이 생긴 것뿐이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조금 쑥스럽습니다. 과연 진정한 작가로서 잘 해나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기고, 작품을 올리고 난 후의 반성도 많기 때문이죠. 지금 생각해봐도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면 그것이 언제든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있을 뿐이죠.

Q 작품을 쓰시고 공연으로 무대에 올라갈 적에 작가로서 만족을 하시는지요? 연극은 배우나 연출 등과 같이 협업 작업이라 작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에 변형이 올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작가로서 느끼는 생각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연극은 배우예술이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물론 연출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스탭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죠. 희곡이 문학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결국 반쪽짜리 결과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의도와 맞아떨어지기만 한다면 그 작품에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 완벽한 희곡은 오히려 공연을 위한 창작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로서 마음을 열고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작품에 약이 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Q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지요?

A 집에서 대학로로 가는 길에 버스를 타면 종로를 지나가게 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종로에 있는 다양한 건물에서 수많은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죠.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출근, 같은 시간 퇴근, 그리고 같은 시간 점심식사는 무얼 먹을까에 대한 고민, 그리고 퇴근 후 짧은 자유시간을 만끽하다가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 되면 다시 출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저들은 과연 행복할까 라는 생각 말이죠.

저희 어머니께서도 근 40년째 같은 직장에 다니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가 물어봤죠. ‘엄마는 지금의 직장생활이 행복해?’ 라고요. 그랬더니 단번에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요. 그 대답을 듣는 그 순간 저 역시 행복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을 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Q 작가로서 현재의 삶에 만족을 하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재 작가의 처우에 대해 생각하고 계시는 점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A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작가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감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작가를 유일한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연극계의 극작가에 대한 처우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아직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고, 그저 제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행복합니다.

Q 작품을 쓰면서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을 하는지요?

A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일단은 작업을 덮어 놓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치고는 게으른 편이에요. 어떤 작가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작업실에 들어가 꾸준히 글을 쓴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구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며칠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는 하지만, 막히는 부분을 만났을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업을 끝내버리죠. 그리고는 밖으로 나갑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환기를 시키죠. 좀 더 시간이 있다면 여행을 떠나는 방법도 있어요. 제가 스물세 살 때, 홀로 국토종단을 한 적이 있었어요. 해남 땅끝에서 임진각까지 걸어서 약 20일 만에 완주를 했죠. 천천히 걸으면서 낯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생긴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업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일단 걷고 봅니다.   

Q 현재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이 있는지요?

A 일단, 「전기수」의 후속작인 「소설가 송복홍」이라는 작품을 내년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전기수」에 등장하는 인물인 ‘업복’과 소설가 ‘송복홍’이 처음 만나게 되는 과정,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 그리고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죠. 「전기수」에서는 ‘송복홍’이 ‘장화홍련전’의 원작자라고 설정되어 있거든요. 「소설가 송복홍」에서는 송복홍이 ‘장화홍련전’을 쓰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후속작이 더 앞서 있죠.

그리고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왜곡에 맞서 고구려가 우리 고유의 역사라는 것을 문학과 예술로서 알리고 싶었습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무대 스케일 너무 커서 과연 공연으로 올릴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합니다.

Q 작품을 보러올 관객들에게 인사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A 이번 「전기수」와 「금강산려관」, 두 작품은 모두가 극단목수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극단목수는 연극의 작품성을 꾸준히 고민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믿고 보셔도 좋습니다. 많이 찾아주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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