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김무열 "무대에 오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김채령님 | 2016.02.02 12:58 | 조회 365



이번 인터뷰는 개인적으로 김무열에 대한 반전이었다. 인터뷰 전 그는 그저 잘 생기고 반듯한 이미지의 연기 잘하는 배우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14년을 배우로 지내온 젊은 예술가로서, 이제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책임감이라는 타이틀을 양 어깨에 짊어진 그의 모습은 활기찼다. 결혼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인생의 반려자와 그 순간을 함께 채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느끼고 온 자의 여유로움 때문일까? 신중하게 때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에너지가 넘쳤으며,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번에 김무열은 장진 감독의 신작 <얼음>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다. 2인극이지만 2인극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무대로 그는 젊은 형사2로 등장할 예정이다. 그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형사 캐릭터를 처음으로 맡게 되어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연습에 임하고 있다던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어서 무대에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Q <킹키부츠> 이후 1여년 만의 무대 복귀다. 어떻게 지냈나.
제대 후 복귀하면서 영화, 뮤지컬, 드라마를 한 편씩 하면서 쉬지 않고 왔다. 영화 <연평대전> 촬영이 <킹키부츠> 연습 들어갈 때쯤 끝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공연에 매진했고, 이후에 케이블방송에서 드라마 한 편을 했고, 그 뒤로 6개월 정도를 쉬었다.

Q 그 사이 결혼도 하고, 한참 신혼 생활 중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면서 일상적인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집에서 와이프가 밥을 해줘서 집밥을 많이 먹게 됐고, 집안일들이 많아졌다. 혼자일 때는 몰랐던 것들이다. (웃음) 그리고 일상적인 것들, 소소한 것들에 더 관심이 가게 됐다. 쉬면서 강아지들이랑 놀고, 여행도 많이 다니게 됐다. 혼자였을 때는 먹고 사는 것에 늘 바빴던 것 같다. 해외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항상 ‘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있었지, 일이랑 여행이랑 놓고 보면 항상 일을 먼저 했다. 이제는 와이프랑 여행 하면서 낯선 곳에서 낯선 것들이 주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익히면서 큰 자극이 되고 있다.

그동안 여행간 곳 중에 하와이 마우이섬이 가장 좋았다. 적당하게 사람들이 있고, 한없이 느슨해지고 뭐든지 천천히 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였다. 영화나 책에서 보는 것처럼 해변가에서 정말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있었다. 잘 꾸며진 해변가도 아닌, 그 동네 사람들이 애들이랑 와서 노는 데였는데도 그 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그런 일상적인 여유로움을 느껴보니 어떤가.
항상 일과 일상을 결부시켜서 생각을 하는데, 배우라는 직업이 우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항상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실제로 내가 그 삶 속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평범한 일상 속에 나를 툭 던져야 되는데, 배우로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점점 그것과는 더 멀어지게 됐다. 늘 연습실, 촬영장, 공연장을 왔다 갔다 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늘 정해져 있으니 어느 순간 틀이 생겨버렸다.

배우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직업인데, 쉬면서 그것에 대한 것도 충전이 됐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혹은 얼마나 많이 겪어 봤는지가 무기가 되기도 하는 직업인데,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많이 채워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웃음)



Q 연극 <얼음>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전에 장진 감독님의 <로맨틱 헤븐>이란 영화에 잠깐 특별 출연한 인연이 있었는데, 그 당시 좋은 기억이 있었다. 대본을 먼저 읽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공연으로 올라갈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불안 섞인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이랑 일단 미팅을 한번 해보자’ 싶었다. 연출가로서, 작가로서 감독님의 말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동안 감독님은 여러 작품 다양하게 해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롭고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도전 정신과 열정에 반했다. 감독님이 작품 이야기를 하실 때 눈이 초롱초롱 빛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제대하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게, 영화를 찍었고 뮤지컬을 했고 드라마를 했으니 “이제는 연극을 해야겠다”라고 말을 하고 다녔다. 인터뷰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오게 된 거다.

Q 이 작품은 두 형사의 이야기라고 들었다.

<얼음>이란 제목이 궁금해서 감독님께 물어봤더니, 제 3자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봤을 때 붙인 제목이라고 하셨다. 물은 원래 형체가 없지만, 얼게 되면 형체가 생긴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제목을 지었다고 하시더라. 살인용의자로 18살 소년이 잡혔다. 그 사건을 막연하게 들여다 봤을 때, ‘누가 누구를 어떻게 했다’라고 이야기를 들으면 흑과 백이 명확히 나뉜다. 우리가 공연을 시작하고 극이 진행되다 보면 물이 있던 게 얼어서 얼음이란 형제가 되는 것처럼. 살인용의자로 잡힌 소년의 이야기도 점점 형체를 띠게 된다. 일단 직접 오셔서 보셔야 한다. 이번 맡은 역은 형사 2라는 캐릭터로, 욕쟁이다. 대화할 때마다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다.

Q 그런데 극 중 용의자로 지목된 소년은 등장하지 않고 두 명의 형사가 빈 의자를 놓고 연기를 하게 된다고 들었다.
전에도 이런 종류의 형식이 없던 건 아니다. 사실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지 않나. 전에 했던 <쓰릴 미>에서도 아이를 납치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노래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길어야 3분이었는데, 이건 1시간 40분을 그런 상태로 끌고 가야 해서 어렵다. 도대체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연습 때도 의자를 놓고 하는데 처음에는 의자가 무섭게 느껴졌다. 의자 자체에 대한 묘한 감정이 생겼다. 그런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실제 의자보다 시선이 점점 올라가게 됐다. 정말 소년 역의 배우가 그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배우의 시선을 쫓아가게 됐다.

Q 박호산 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광화문 연가> 이후 오랜만이지 않나.
호산이 형이랑은 2005년도에 <어쌔신>이란 뮤지컬을 같이 했다. 그때 형을 볼 때 옛날 배우라는 느낌이 강했다. (웃음) 워낙에 오래 연기를 했으니. 왠지 꼬장꼬장할 것 같고 친해지기 힘들 것 같은 선배 이미지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친해졌고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형이랑 생긴 게 비슷해지고 있다. 대학로에 둘이 닮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웃음) 이번에 형사1, 2로 다시 만나서 서로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입버릇처럼 둘이 빨리 형제를 해야 하는데, 장진 감독님께 한번 써 달라고 조르고 있다. (웃음)

Q 2인극이지만, 어떻게 보면 2인극이 아니다. 관객에게도 새로운 체험이 되겠지만 배우에게도 새로운 형식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공연은 2인극이라고 하기에는 3인극이고, 3인극이라고 하기에는 제3의 인물이 형체가 없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관객들이 개입을 해줘야 한다. 모든 공연이 그렇긴 하겠지만, 관객들을 다 끌고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4인극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우리가 저기 빈 의자에 ‘소년이 있다’라고 믿고 연기를 하면 관객들도 어느 순간 우리와 같이 호흡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서 무대를 장악해서 관객들을 모두 빈 의자로 끌고 와야 하는 책임감이 엄청나다. 그걸 제대로 하느냐, 못 하느냐가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숙제 같다.

(플디: 어떤 관객들은 소년이 진짜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시는 분도 있다.) 하하하. 서프라이즈로? 그것도 괜찮은 생각 같다. 연습실에서 우리끼리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공연이 올라가고 잘 되면 나중에 번외로 오직 소년만 나와서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웃음)


Q 오랜만에 대학로에 와서 연습하고 있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2002년에 지금은 아르코예술극장인 문예극장에서 청소년 뮤지컬 <짱따>로 데뷔를 했었다. 주인공이 짱인데, 따인 애였다. 그때 직접 대학로에 포스터 붙이고 그랬는데, 지금도 대학로 상업화가 심하다고 그러는데, 그때 당시에도 “선배님들이 대학로가 많이 변했다”고들 말씀하셨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 나이트클럽들이 쭉 있었는데, 삐끼들이 놀다 가라고 호객 행위를 많이 했다. 항상 대학로는 상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인 것 같다. 그만큼 변화가 빠른 곳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낯설면서도 익숙함이 있다. 정겹고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나 싶기도 하고, ‘변한 게 없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또 관객분들도 여전히 공연을 보러 다니는 걸 보면서 ‘참 좋다’ 라고 느낀다. 그래서 다시 연극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신기한 게 연극을 하면 채워지는 느낌이 있다. 뮤지컬은 요즘에 워낙에 대형화되어 있고 연극보다는 상업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보니까 관객들의 판타지를 어느 정도 채워줘야 하는 게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에 연극에서 보여드릴 모습은 사실 그런 것과는 동 떨어져 있다. 연극 자체도 실험적이고, 내가 맡은 캐릭터도 관객들의 판타지 속에 존재하는 모습이 아닌 내가 그저 하고 싶은 역할이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이걸 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불안감도 있다. 대사도 너무 많고, 해야 할 것 투성이지만 항상 마음은 편하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잘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혹은 ‘하길 잘했다’라는 도전과 성취감이 함께 오길 기대하고 있다.

Q 요즘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요즘 연극 연습을 하면서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라는 거. 우리 세대나 혹은 저보다 한 두 살 어린 친구들을 보면 뭔가 그 세대만의 특성을 잃은 느낌이다. 옛날을 추억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감회에 젖고 그때를 그리워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세상이 각박한가’ 하고 느낀다.

이럴 때 나는 아직 힘 없는 젊은 예술가일 뿐이지만 ‘예술이 가야 될 방향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든다. 그래서 연극하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고, 앞으로 관객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건넬까?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그들의 의식을 툭 건드려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새로움과 다양한 것에 대한 목마름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지금 하는 연극부터 잘해야지, 조그만 것부터 실천해야지 생각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자꾸 생각만 많아지는 것 같다. (웃음)

Q 책임감이 강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무대에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이제 가정도 꾸렸는데 어떻게 하면 사랑과 감사함을 갚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게 된다. 그전에는 그 답이 막연하게 항상 좋은 연기,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인가’라는 책임감이 생기게 됐다. 그래서 작품 선택을 할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점점 작품 선택이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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