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이순재 "말년에 만난 '시련'…마지막 큰 작품일 것"

미친배우님 | 2015.12.06 10:13 | 조회 443
아서 밀러 작 연극 '시련'서 '댄포스' 역
'세일럼 마녀재판' 모티브
권력의 광기 보여주는 악역
내년이면 데뷔한 지 60년
'햄릿' 영화 보고 입문했는데
정작 햄릿 역 못해봐 아쉬워
배우 이순재가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외벽 앞에 섰다. 연극 ‘시련’으로 57년 만에 다시 국립극단 무대에 선 이순재는 “‘세일즈맨의 죽음’에 두어 번 출연하며 아서 밀러를 좋아하게 됐다.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사진=방인권기자 bink7119@).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60년 동안 한우물만 팠다. 영화광이던 스물한 살 청년은 백발의 노장배우가 됐다. 연극·영화·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300편 가까이 출연했다. 1956년 서울대 철학과 3학년 때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에 발을 들인 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부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최근에는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등에 출연하며 ‘직진순재’ ‘국민할배’란 별칭까지 얻었다.

배우 이순재(80)는 여전한 현역이다. 이번에는 57년 만에 국립극단 무대에 선다. 아서 밀러의 대표작 ‘시련’(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주지사 댄포스 역을 맡았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원칙을 굽히지 않고 무자비하게 사형을 선고하며 권력의 광기를 보여주는 악역이다. 이순재는 “밀러의 시련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큰 작품이 될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내놔도 공감할 만한 상당히 의미 있는 연극이다.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소개했다.

◇2막 출연…200마디 연륜 울림

그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절대악’으로 보는 극 속 모습이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마 위 깊이 패인 주름과 살짝 쳐든 고개, 오른쪽 주머니에 얹은 손은 권위적인 댄포스의 고집으로 충분히 읽혔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기자들에게 먼저 선보인 연극 ‘시련’에서 이순재는 2막에 등장했음에도 무대를 압도했다. 권위적이면서도 때론 비열한 모습으로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했다. 연륜 있는 연기 속 팽팽한 긴장감이 대사를 치고 올라왔다.

올해 국립극단의 대미를 장식할 ‘시련’은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1950년대 미국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 작품. 169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세일럼 마녀재판’을 모티브 삼아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 개인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집단적 광기가 어떻게 사람과 사회를 파괴해 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순재는 “댄포스는 최고 정치인으로 행정과 법률을 모두 다루는 복합적 인물이다. 깊이 있는 캐릭터라 꼭 해보고 싶었다. 대사는 200번쯤 나오는데 쉴새 없이 상대 배우와 맞붙어야 하는 역할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국립극단에 이 작품 제작을 먼저 의뢰했을 만큼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두해 전 서울대 동문 극단 관악극회에서 ‘시련’을 연출했고 배우 대사훈련을 시킬 때 필요해 대학강의에서 워크숍 작품으로 다루기도 했다. 시대를 초월한 의미가 있다. 작품이 함유한 정치적 의미, 시대 배경, 인물 성격도 명료하다.” 국립극단과의 인연은 1958년 연극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출연한 뒤 같은 해 한차례 더 무대에 선 게 전부다.

◇영화 보며 연기에 입문한 ‘철학도’

그의 대본을 보면 분석한 것이 빼곡히 적혀있는데 이번 공연은 무대 위에 객석을 올려 관객과 관객이 마주보도록 꾸민 만큼 동선 체크를 철저히 했다. 그는 “인물이 많아 자칫 동선이 겹칠 수 있고, 서로 주고받는 대사와 발성도 커야 하기 때문에 대사도 집중해 빨리 외웠다”고 귀띔했다.
배우가 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끼가 많은 학생도 아니었다고 했다. “1950~1960년대에는 취미생활이란 게 별로 없었다. 먹고사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대였다. 다행히 그 시절에 세계의 좋은 영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스카라, 국도극장 등을 돌며 닥치는 대로 봤다.” 대학 2학년 때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을 도맡았던 영국의 로렌스 올리비에가 나온 ‘햄릿’을 봤는데 홀딱 반했다고 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주한미군 영화잡지, 원어자료를 뒤져가며 올리비에의 정보를 모았다. “당시엔 배우를 ‘딴따라’로 생각하고 평가절하했지만 ‘저 정도면 연기도 해볼 만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두끼를 스프로 때우며 무대에 올랐다. 2008년 연극 ‘라이프 인 더 시어터’ 공연 중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무대를 지킨 일화는 연극계 전설이 됐다. 후배들은 “이순재 선배를 보고나면 연극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내년이면 데뷔 60년…“그만두려한 적 없어”

TV 출연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고 했다. 1964년 개국한 TBC에선 1980년 언론통폐합 때까지 16년 동안 전속 탤런트로 활동했다. 이순재는 “대학졸업 후 11년 동안 연극을 하며 출연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서둘러 나온 부지런한 배우. ‘직진 순재’란 수식어가 안성맞춤인 이유다. 마침 첫눈이 내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인 만큼 그와의 인터뷰는 오래 기억될 듯 싶다.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거기서는 출연료를 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었다. 살아보려고 한 일이 계기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시련도 있었다. “왜 기복이 없었겠나. 언론통폐합 이후 배우 쏠림현상으로 일거리가 없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배고파도 끝을 보겠다는 다짐으로 연기인생을 굳게 해준 게 바로 연극이다. 그러다가 1982년 KBS ‘풍운’이란 작품에서 대원군 역에 캐스팅됐다. 담배를 끊었다. 가래 끼는 소리가 싫었다. 대상은 못 받았지만 대한민국 방송대상을 받았다.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후 최장수 일일극 ‘보통사람들’, 김수현 작가의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이 뭐길래’와 ‘허준’ ‘베토벤 바이러스’ 등 굵직한 작품에 연달아 출연했다. 이순재는 “그간 수많은 배역을 맡았지만 햄릿 역은 못했다.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 힘들 것 같다”며 아쉬운 웃음을 지었다. “내년 1월 SBS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를 준비 중이다. 내년이면 데뷔한 지 60년이 된다. 후배들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뭘 준비하는 모양인데 그냥 조용히 치르고 싶다. 어떤 작품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하.”

연극 ‘시련’으로 57년 만에 다시 국립극단 무대에 선 이순재는 “오래된 고전은 아니지만 모처럼 원작 중심의 밀러 대표작이다. 시의성 있는 작품이어서 던져지는 메시지도 많다.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직접 와서 보면 연극적 충족감을 느낄 거다”고 환하게 웃었다(사진=방인권기자 bink7119@).
연극 ‘시련’으로 57년 만에 다시 국립극단 무대에 선 이순재(사진=방인권기자 bink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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