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는 택시 한번 타보실래요?” <택시 드리벌> 김민교

미친배우님 | 2015.08.23 18:17 | 조회 464



장진이 써 1997년에 첫 세상 빛을 본 연극 <택시 드리벌>이 오랜만에 관객들을 찾아온다. 서른 아홉 살 노총각 택시기사 장덕배가 다양한 군상의 승객들을 택시에 태우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덕배가 겪어내야 할 고단한 현실이며 아이러니한 사회 구조의 일면들로, 보는 이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 왔다. 초연 당시 최민식이 열연을 펼쳐 화제가 된 덕배 역을 올 무대에선 김민교가 맡는다. 배우, 작가, 연출가로 대학로를 누벼왔던 그는 SNL코리아 크루로 활동하며 허를 찌르는 탁월한 표현력과 유머를 발산한 데 이어 드라마 <당신만이 내 사랑>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 속에서 묵직하고 진솔한 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렇기에 큰 웃음 끝에 이어지는 씁쓸한 뒷맛이 더욱 진한 잔상을 남기는 <택시 드리벌>에서 '희비극'을 넘나드는 그의 진가가 더욱 발휘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Q. <택시 드리벌> 참여에 김수로의 '꼬임'이 큰 작용을 했다고 들었다. (웃음)
나도 언젠가는 작품에 흥행 면으로 도움이 되는 배우, '나'라는 배우를 믿고 많은 관객들이 찾아올 수 있는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막연한 소망이 있었는데, 예전에 러브콜이 있을 땐 그걸 이루기엔 좀 이르다는 생각이 있었고 지금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고사했는데 수로 형님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11가지를 대더라. (웃음) 원래 이번에도 거절하려고 전화로 말하긴 미안해서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아우, 너무 말을 잘 해서 (웃음) 형님 이름을 '김모사'로 바꿔야 한다. (웃음) 마치 내가 이번에 연극을 안 하면 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 냥 몰아가더라. (웃음)

Q. 결국 넘어간 셈이다.
그 이유만으로 작품을 했겠나. 내가 김수로 프로젝트 1탄인 <발칙한 로맨스> 작가 겸 연출가였다. 어떻게 보면 프로젝트를 발동 걸게 만들어놨는데 책임감을 가져야지. 또 워낙 좋은 작품이고, 욕심나는 배역이니까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방송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소진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더라. SNL하면서 거기에 내 아이디어나 희극 코드 같은 걸 많이 부어 넣어서 굉장히 많이 소진된 것 같다. 이제 채울 시기가 되었다.

Q. 이번에 연출은 하진 않지만 <택시 드리벌>은 장진이 쓰고 연출한, '장진식 코미디'가 매력인 작품이다. 유머 스타일을 논할 때 김민교도 나름의 색이 있는 배우 아닌가. 두 스타일의 충돌은 없나?
있다, 약간. 장진 감독님이 약간 소동극? 누군가 소리를 막 지르면 반대 사람이 더 크게 소리치면서 소동이 일어나는, 그런 펼치는 스타일의 희극을 좋아하신다면, 난 은근슬쩍, 능글능글한 희극을 좋아한다. 포즈 딱 잡고 쳐다보는 거. 저번에 <서툰사람들>을 감독님이 연출하시고 내가 무대에 섰을 때도 아무래도 조금 부딪히는 게 있더라.

그래서 당시 조연출이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내가 정말 못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 감독님 스타일로 하는 것만 줄곧 봐 왔고 그게 100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좀 다른 스타일로 푸니까 관객 반응이 없을 줄 알았다고. 그런데 막상 무대 올라가서 반응이 좋으니까 새로웠다고. 연출님 스타일의 장점을 살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나름대로 살리니 잘 나왔던 것 같다.

Q. 오랜 시간 친분을 쌓아온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역사가 오래 된 친구들이 참 많다. 대학 동기가 네 명인데, 동기 중에서도 제일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이다. 그래서 안 피한다면 거의 매일 술 마실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내가 많이 피한다, 살 찐다고. (웃음) 많이 먹지도 않고 운동도 하는데 왜 이렇게 살이. (웃음) 건형이도 걔가 신입생일 때 내가 왕고 (웃음), 오티 때 처음 본 선배가 아마 나일 거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친하게 지냈고. 또 내가 연출했던 <광수생각> 때부터 함께 했던 배우들도 있어서 거의 가족 같다. 연습실 가면 정말 본가 같은 느낌이다.


Q. 1997년 초연 당시 덕배 역의 최민식을 비롯, 신하균, 임원희 등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이 작품으로 최민식은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것에 기 죽을 김민교는 아닌 것 같다. (웃음)
뭐, 그닥. (웃음) 그런데 최민식 선배님은. (웃음) 예전에 연기를 막 배울 때는 한국에서 연기를 제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1위가 될 수 있을지, 모든 사람이 '쟤가 한국에서 제일 연기 잘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그걸 목표로 두고 정진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살았다. 내 모든 상황과 사고를 연기에 맞춰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이걸 나중에 연기에 써 먹어야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연기라는 게 1, 2위가 없고 색깔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거짓으로 하는 배우와 진실로 하는 배우는 분명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믿는데, 정말 속으로 뭔가 알고 느끼면서 하는 배우의 입장이 된다면 1, 2순위는 정할 수 없고 색깔만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민식 선배님이 된장찌개라고 하면 나는 김치찌개 같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된장찌개가 김치찌개보다 더 훌륭한 음식이라고 얘기할 순 없지 않나. 그걸 인지하게 된 후로는 좀 두렵지 않다. 내가 거짓말을 안 하면 되니까.

Q. 초연 후 18년이 지난 작품이다. 변한 시대에 따라 극중 에피소드 등에 수정이 있는가?
승객들이 합승하는 장면도 있고 한데. 아예 옛날 이야기로 갈까, 아니면 현대로 할까, 여러 방면으로 고쳐봤는데, 결국 이 작품은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2015년을 배경으로 했다. 만약 시대에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오프닝 멘트로 "이 작품은 장진 감독님이 합승이라는 이야기를 써 놔서 우리가 바꿔보려고 했는데 작가가 오지도 않고 해서 (웃음)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관객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시지 않을 거다. 오히려 조금씩 바꿔서 하느니 차라리 그렇게 가는 게 낫지 않겠냐, 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대신 요즘에 맞게 좀 더 채워지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Q. 덕배의 택시에 다양한 군상의 승객들이 탄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이나 장면이 있다면?
너무 많은데. (웃음) 희극적인 장면들은 워낙 많아서, 기막히게 웃긴 장면도 많다. 단순히 웃기기 보다는 거기 나오는 손님들이 너무 재미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택시에 타서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약간 '여의도 텔레토비' 보는 것 같다. (웃음) 요즘 정치에 대해 각자 신랄하게 얘기하는데 그런 장면도 인상 깊고.

또 '화이'라는 추억 속 첫사랑을 무대 위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감정적으로 아프더라. 연기할 때 나를 가장 흔들어 놓는 건 그 장면이다.

Q. 대중들에게는 SNL을 통해 희극 이미지가 강하게 심어졌는데, 이후 드라마 <당신만이 내 사랑>에서는 코피노 이남순 역으로 시청자의 눈물을 많이 빼앗기도 했다. 아마 <택시 드리벌>에서는 예상 못한 또 다른 '김민교'의 모습에 관객들이 놀랄 것 같다.
내 카톡 문구가 '나는 비극을 더 잘해'다. 원래 비극에 더 자신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장난끼도 많고 까불기도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비극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비극을 더 많이 공부해서 전천후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래서 학교 작품 오디션을 봐도 다 비극적인 역할을 보고. 또 삶 자체는 되게 슬펐다. 그걸 누르고 감추려고 해서 그렇지, 인간 김민교가 가진 추억들은 슬픈 게 되게 많다, 강렬하고. 그런 면들이 있어 비극에 더 다가가기가 쉬울 때가 있다.


이남순 역 할 때도 6개월 하는 동안 한 두 달 치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남자 수도꼭지처럼. 대본에 '고개를 들었는데 눈물이 떨어진다'고 쓰여있으면 거기에 맞출 정도다. 이번에 영화 <조작된 도시> 찍을 때도 감독님이 드라마를 보고 "민교씨가 희비극을 넘나드는 게 맘에 들어서 캐스팅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앞으로 배우로서 보여줄 게 많겠다고 생각한다. 그간 희극적인 것을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의외의 사람이 색다른 플레이를 할 때 감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Q. SNL을 비롯해 <발칙한 로맨스> 등 김민교가 더욱 많은 이들과 만난 작품은 비극은 아니다.
시대가 웃음을 원하더라. 삶도 나라도 힘드니 웃고 싶고 가벼운 작품을 보고 싶어하고. 예전에 영화 홍보 때문에 라디오 방송을 하러 가야 해서 강남에서 배우들이 다 같이 모여서 출발했는데, 15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반이 걸렸다. 출근길이라 차가 막혀서. 그때 내가 운전하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렵게 출근하고 이렇게 어렵게 퇴근해서 내 공연 보러 오는 거구나.' 그래서 절대 재미없는 작품 하지 말자, 웃게 해주자, 라고 마음을 바꿨다. 그 때부터 희극을 시작하게 되었다.

Q. 덕배의 고단하고 파란만장한 삶이 인간 김민교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 좋은 일이건 좋은 일이건 다 내 안에 축적되어서 배우로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간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겪었던 많은 상황들 등이 많이 도움이 된다. 덕배는 되게 기댈 곳 없는 역할이다. 난 상대 배우와의 소통, 리액션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우라 상대방이 주는 걸 잘 받아 튕겨내는 스타일인데, 이 작품은 좀 그러기 어렵다. 계속 내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사람들이 헤집어놓고 나가면 또 내 무대가 펼쳐지는 식이라서. 쉽지 않지만 그간 해왔던 많은 캐릭터들과 삶이 묻어나게 되겠지.

Q. 아버지가 지방의 큰 종합병원을 가진 의사였고, 수영장, 정원사, 집사도 있을 정도로 부유했으나 사기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도 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청소년 때였는데, 버틴 것인가?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게 버티는 거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지금 살아야 하니 발버둥치며 선택하고 또 선택하고 그러다 보니 버티며 산 것이 된 셈이다. 그런데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은 게, 어려서부터 "나는 우리 민교를 믿는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해 주셨다. 탈선 상에 섰을 때도 그 말이 되게 큰 지침이 되었다. 이렇게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배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

연극만 할 때도 막연히,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 이 연기판에서 언젠가는 나한테 시선이 돌아올 때가 있지 않겠냐, 그렇게 되면 분명히 나는 그 시선을 안 놓칠 자신이 있고,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그때까지 못 버티면 병신이지, 그런 마음으로 지냈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Q. 내 연기에 대한 믿음은 언제부터 갖게 되었나?
연기를 그만 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너무 못해서. 서울예대도 공부로 들어간 거다. (웃음) 그런데 끼도 많고 응원단장도 하고 보컬도 했으니 들어가면 되게 잘 할 줄 알았는데 연기는 다른 영역이더라. 무대에 서니 너무 못하고, 치명적으로 발성을 못했다. 공연 연습 한 번 할 때마다 목이 쉬니까 '아, 내가 연극할 수 없는 배우구나, 타고나길 허약한 목청을 가지고 태어났구나, 그래서 연기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을 심각하게 했다.


그런데 군대 가서 마지막 내 인생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내 목소리를 바꿨다. 군대에서는 날 아무도 모르니까 배우로서 가져야 될 소리를 내려고 많이 노력했고. 또 2년 간 뒤쳐지기 싫어서 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사람들을 대할 때의 행동들, 이런 모든 걸 연기적으로 연계해서 생각하려고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 했다.

제대하고 복학 할 때 첫 작품이 야외 공연이었는데 그 때 다들 내 소리만 들린다고 극찬해 주셨다. 그 극찬이 나를 춤추게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자신감도 막 붙고. 처음 연기 배울 때 "왜 연기 하려고 해요?"라고 물으면 "남의 삶을 살 수 있고" (웃음)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한창 활동하면서 공부할 때는 "잘한다고 해서요" (웃음) 그렇게 말했다면, 서른 넘어서는 "돌이켜 봐도 이것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요."라고 대답한다. 자신감, 긍정이 그만큼 중요한 거다.

Q. '대장' 느낌이 있다. (웃음)
그런 게 좀 있다. (웃음) 학교 다닐 때도 짱이었고. (웃음) 내가 합기도 사범 출신이라 싸움을 잘 했다. 잠시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그걸 많이 기억하더라. (웃음) 수로 형도 워낙 리더 체질이라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웃음)

Q.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세상 풍파에 유연하게 굽히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결혼을 안 했다면 SNL에서 그렇게 연기 안 했을 것 같다. 나름 내가 연기에 좀 골수인데 (웃음) 주변에서 내가 그렇게 희극으로 나와서 잘 될 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연기할 때 굉장히 진지하고 절대 거짓말 하면 안되고, 그런 사람이었거든. 가장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나를 던지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가장이 되고 책임감도 있고, 좀 어려운 시기에 SNL을 시작해서, 자존심이고 뭐고 가족을 위해서 뭘 못하겠나, 그런 생각으로 다 던졌다. 그래서 좋은 결과도 있었던 것 같고 내 영역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Q. 연기, 배우는 잘해서 하고 있나, 좋아서 하고 있나?
어떤 배우가 로또가 되면 어디로든 뜨겠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된다. 로또가 되면 더 배우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배우로 살 것 같다. 연극을 많이 하면서. 지금은 연기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연기를 빼놓는 건 뇌나 심장이 빠진 김민교가 되는 것 같다.

어쩔 때는 연기하는 순간이 더 스스로에게 진실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연기 안 할 때는 남 듣기 좋은 말도 하고 내 치장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럴 때가 있으니까. 사는 것 보다 연기 하는 게 더 편한데? 그럴 때도 있었다. 되게 편안하고 행복하고 즐겁고, 연기는 내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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