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류로 꿈틀대는 공연계

미친배우님 | 2015.05.18 16:47 | 조회 595



최근 공연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공연으로 국내 뮤지컬 시장 확대의 물꼬를 튼 설앤컴퍼니를 위시하여 <맘마미아!> <시카고> 등의 스테디셀러 레퍼토리를 보유한 신시컴퍼니, <지킬앤하이드>를 통해 ‘티켓파워’라는 단어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오디뮤지컬컴퍼니, 영미권에서 벗어나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의 유럽 뮤지컬을 소개해 온 EMK뮤지컬컴퍼니, 그리고 뮤지컬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아시아 관객들의 국내 유입에 기여를 한 엠뮤지컬아트 등 최근 10여 년간 한국에 대형 유명작들을 선보이며 시장과 관객층 확대에 기여를 해온 대형 공연 제작사들의 ‘큰 바퀴 굴림’과는 또 다른 형태를 시도하는 신생 제작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출연이 공연시장의 규모를 재편함과 동시에 콘텐츠의 다양성 확대, 그리고 장기적인 공연계 성장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가. 이들의 움직임을 통해 그 가능 여부를 짐작해 보자.

엔터테인먼트 세계로 본격 영입, 시선과 범위 확대되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본격적인 공연계 진출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 자사 소속 배우나 아이돌들을 간헐적으로 뮤지컬에 출연시켰던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인적 콘텐츠와 영화, 드라마 등 공연 이외 장르에서 다져왔던 제작 노하우, 그리고 자본력을 바탕으로 공연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엑소,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한류 스타들이 대거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예능, 영화 등의 콘텐츠 제작 사업을 펼치는 자회사 SM C&C를 통해 공연 제작에 뛰어들어 2014년 첫 제작 뮤지컬 <싱잉인더레인>을 선보였다. 이 작품에는 슈퍼주니어의 규현, 엑소의 백현 등 다수의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이 출연했다.

또한 2008년 설립된 콘텐츠 전문 유통사로 영화 <7번방의 선물> <변호인> <신세계>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의 화제작을 투자, 배급하여 2013년 한국영화 점유율 1위를 기록한 뉴(NEW)도 2013년 연출가 장진이 처음 뮤지컬에 도전해 이슈가 된 창작 뮤지컬 <디셈버>를 제작했고, 홍보대행전문업체인 프레인의 여준영 대표도 뮤지컬 제작에 관심을 갖고 오랜 준비를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2015년에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된 곳은 JYJ, 최민식, 설경구, 이정재 등 굵직한 인물들이 대거 소속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일 것이다.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말 공연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 씨제스 컬쳐를 설립해 오는 6월 막을 올릴 첫 제작 뮤지컬 <데스노트>를 준비 중에 있다. 일본의 대형 종합엔터테인먼트사인 호리프로와 공동제작으로 선보일 이 작품은 소속 아티스트 김준수의 군입대 전 마지막 출연 뮤지컬로 예고되고 있으며, 국내 배우로는 최초로 웨스트엔드 무대에 선 홍광호를 비롯해 정선아, 박혜나, 강홍석 등 화제 배우들의 원캐스트 출연이 알려져 지난 4월 29일 1차 티켓 오픈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데스노트>에서 엘 역을 맡은 김준수(사진:씨제스컬쳐 제공)

‘사람이 재산' 인적 콘텐츠 선점 경쟁

이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가 공연 제작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데에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인지도 높은 인적 콘텐츠, 즉 소속 배우들의 영향이 무엇보다 클 것이다. 캐스팅이 흥행과 직결되는 현 공연계 상황에서 인지도와 높은 팬덤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소속 배우들, 또는 공연보다 대중 장르인 영화, 드라마 제작을 통해 연을 맺은 유명인들을 캐스팅 리스트에 좀 더 쉽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제작 공연의 상업적 성공을 더욱 낙관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순수 공연제작사로 출발한 집단에서도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하는 사례가 더욱 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자회사 격인 라이선스 배급 전문사 떼아뜨로와 제이블 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해 설립한 EA&C에는 안재욱, 김소현, 민영기, 김주원 등이 소속되어 있고, 파파프로덕션은 디오르골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본격 배우 매니지먼트에 나서고 있다.

2008년 뮤지컬 제작 피디들이 모여 만든 공연제작 전문 기업인 알앤디웍스도 최근에 리사, 차지연, 박혜나, 이주광, 송용진, 이충주 등 뮤지컬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매니지먼트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배우 황정민의 아내 김미혜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공연기획 전문업체 샘컴퍼니도 황정민 뿐 아니라 강하늘, 정상훈, 최우리 등을 소속 배우로 두고 있다. 김수로와 손잡고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뮤지컬, 연극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콘텐츠 제작사 아시아브릿지콘텐츠㈜ 역시 박한근, 문진아 등의 배우들을 영입한 상태다. 이에 앞서 PMC네트웍스와 오디뮤지컬컴퍼니, 엠뮤지컬아트도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나만의 색과 콘텐츠’가 승부처, 열띤 신작 개발 열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서 공연 시장이 갖고 있는 큰 확장 가능성을 본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공연계 진출도, 기존 제작사가 장르를 불문하고 활동력을 넓힐 수 있는 많은 배우들을 영입하는 것도, 결국엔 ‘완성도 높은 콘텐츠’ 제작을 위한 것이며 최후의 승부처 역시 그곳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최근 2, 3년간 한국의 창작극 개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나타나는데, 창작개발 지원 프로그램의 선두 격에 서 있는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를 비롯해 뮤지컬, 연극, 오페라, 창작뮤지컬의 제작지원과 유통, 재공연을 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인 '창작산실', 그리고 각종 페스티벌과 민간, 공공단체에서 펼치고 있는 창작극 개발 및 창작진 인큐베이팅 사업은 신규 콘텐츠 생산에 좋은 촉진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지원 사업에 힘입어, 혹은 오랜 준비 끝에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 작품을 선보이는 신생 제작사의 움직임은 시장의 다양성 및 관객층 확대 측면에서 더욱 반가운 움직임이다.


김수로프로젝트 9탄, 연극 <데스트랩> 2014년도 공연 장면

싸이더스HQ 최진 부사장이 독립해 세운 콘텐츠 제작사 아시아브릿지콘텐츠㈜는 배우 김수로를 공동 프로듀서로 내세운 ‘김수로 프로젝트’를 통해 <아가사> <블랙메리포핀스> <유럽블로그> 등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헤세와 그림전>을 기획해 전시분야로도 프로젝트의 범위를 넓혔다. 개성을 갖추되 대중성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이는 작품들이 다수로, <데스트랩>은 연극 부문에서 오픈런 공연을 제외하고 지난해 가장 많은 티켓을 판매한 작품으로 집계되었다.(인터파크 티켓 판매 기준)

제작사 네오프로덕션은 윤심덕, 김우진 투신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창작 뮤지컬 <글루미 데이>(현 <사의 찬미>)를 통해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 내었으며 이후 <비스티 보이즈>에서도 미스터리하고 독특한 이미지의 무대를 선보였다.

과거 설앤컴퍼니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오훈식 대표가 중심에 있는 알앤디웍스는 그간 <캣츠> <위키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의 공동제작과 <브로드웨이 42번가> <하이스쿨 뮤지컬> 등의 제작대행을 맡았으며, 최근에는 <더 데빌> <마마 돈 크라이> 등 마니아 관객들에게 더욱 열띤 지지를 받고 있는 강렬한 느낌의 작품을 제작해 주목 받고 있다. “온전히 콘텐츠 제작만 담당하는 15명의 제작진들이 세 개의 팀으로 나눠 각기 다른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알앤디웍스의 특징”이라고 설명한 오 대표는, “짧은 역사, 열악한 환경의 국내 시장에서는 작품 제작 및 공연만으로는 탄탄한 수입 구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수의 콘텐츠를 보유함과 동시에 해외 라이선스 사업, 배우 매니지먼트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상사 형태의 회사를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앤디 웍스 제작,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최근 누구보다 가열차게 창작극을 제작하여 선보이고 있는 곳은 HJ컬쳐다. 2011년 레히와 공동제작해 초연한 <셜록홈즈 : 앤더슨가의 비밀>은 초연 예매율 98%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이듬해 한국뮤지컬대상과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한 11개 부문을 석권하며 그 해 최고의 창작 뮤지컬로 떠올랐다.

또한 2013년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시작으로 2014년 <살리에르>, 2015년 <파리넬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신작을 개발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받아, 한승원 에이치제이컬쳐 대표가 2014년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선정,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 하반기 공연 예정인 연극 <만추>, 뮤지컬 <드가장> 등의 신작 라인업 또한 공연 애호가들의 기대를 사고 있다.

이 밖에 샘컴퍼니는 드라마 <미생>을 통해 주목 받은 자사 소속 배우 강하늘이 주인공으로 나서 전석 매진을 기록한 연극 <헤롤드&모드>를 제작했으며, 하반기에는 <너와 함께라면> <웃음의 대학>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로 국내에도 익숙한 일본 코미디 작가 미타니 코키의 히트 뮤지컬 <오케피>를 제작해 한국 초연 예정이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는 황정민을 비롯해 조승우가 출연을 확정지어 일찌감치 2015년 화제작 대열에 들어섰다.


HJ컬쳐 제작, 뮤지컬 <파리넬리>

공공 공연장 중에서는 충무아트홀이 지난해 <프랑켄슈타인>을 제작해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올 상반기 제작 공연인 <난쟁이들> 역시 유쾌한 사회 풍자 형태에 박수를 받았다. 내년 공연 예정작으로 미국 작가 루 월리스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벤허>를 창작 뮤지컬로 제작 준비 중에 있다.

공연계 성장, 낙관 가능한가?

최근 한국 공연계에 대한 어떠한 질문에도 낙관적인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공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돈 버는 공연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국내 공연시설 및 단체, 공연제작사 등 20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2014년 하반기 공연계 실적은 악화된 것으로 나온다. (2014년 공연예술 경기 동향조사 하반기 최종 보고서, 공연시설 46.1%, 공연단체 38.1%, 공연기획제작사 44.4%가 악화로 응답)

하지만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제외한 해외 공연 제작진이나 배우들이 내한해 한결 같이 하는 말은 "한국처럼 공연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공연된 작품은 10,862편으로 최근 10년간 국내 무대에 오른 공연 편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파크 티켓 판매 기준) 또한 위의 예술경영지원센터 조사 자료에서도 2015년 상반기 공연계 경기지수 전망을 전년도 동기 대비 109.45로 산출하여, 예년보다 호전될 것을 예상했다. (100 이하는 악화, 100 이상은 호전, 100은 보합 수준)

무엇보다 공연권 수출을 통해 국내 창작 뮤지컬이 해외 진출을 하는 경우가 매년 증가하는 것 역시 현 한국 공연계의 움직임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창작 뮤지컬의 아시아 투어 공연 뿐 아니라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의 국내 버전이 그대로 다시 해외 투어 공연을 펼치는, 일종의 중계무역 형태의 해외 진출도 공연 작품 뿐 아니라 국내 배우와 창작자들의 능력과 매력을 알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이제는 단순한 수적 팽창과 거의 실시간으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신작을 국내 무대에 올리는 것만이 공연계 성장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바라보는 넓은 시선, 콘텐츠를 또 다른 길로 이끌고 확장시켜나가는 장기적인 계획과 새로운 시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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