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연기란 무엇인가? (4) - 임주현 교수

임주현(비회원)님 | 2013.09.24 15:06 | 조회 1805

2013. 5. 3.

연기란 무엇인가? (4)

(* 연속게재)

서울종합예술학교 방송영화예술학부

방송연예과 전임교수 임 주 현

 

역할을 입고, 역할을 벗고...... 안타깝게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닌 듯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우는 작품을 위해 대본 즉 텍스트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 읽고, 읽고, 또 읽는다. 그러는 동안 글자들은 어느 새 자신의 언어가 된다. 배우가 글자를 눈으로 보고 뇌로 그 의미를 생각하고, 상황을 떠올린다. 그 상황 속에서 행해야 하는 주체, 인물의 입장과 시각으로 생각한다. 그 후 대사를 내뱉는다. 앞에 서있는 배우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다. 앉아있는 연습실 의자는 왕좌로 바뀌고, 상처받은 한 남자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관객석은 왕궁의 넓은 홀이 되기도 하고, 장면이 바뀌면 광활한 대지가 되기도 한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처받은 한 남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히 나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바로 이 순간 무대 위에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상처받은 한 남자를, 배우인 내 몸을 통과시켜 만들어낸 결과물만이 존재할 뿐이다. 연기가 예술이라고 생각되는 출발점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지금까지 명작이라고 여겨지는 작품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우들이 연기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절대 같을 수 없다. 아무리 모방을 하고 답습을 해도 같을 수 없다. 투입되는 역할은 같아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배우의 몸을 통과하며 나타난 극중인물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20세기가 훌쩍지난 현재, 그리스 비극이 공연되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스 시대 배우는 중간자(Medium)였다.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인간의 이야기를 신에게 전하고, 신의 명령이나 관점을 인간에게 전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영감(spirit)을 통해, 때로는 가공(fiction)을 통해 만들어진 텍스트가 바로 그 대본 역할을 했다. 물론 오늘 날의 배우는 그리스 시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매체가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은 작품에서 말하는 ‘주제(subject)’보다는 행하는 ‘주체(actor)’에 더욱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타 시스템을 통한 스타배우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입하고, 그의 다양한 변신을 기대하고, 그가 선전하는 물건을 구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배우”의 역할은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역할을 자신의 개성을 통해 실재하는 인물로 “표현”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 배우는 확장된 사고와 감성, 몸과 소리의 다양한 표현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수 많은 역할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관점의 영역이 다섯 살짜리 꼬마의 사고라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까?

장면이 끝나면, 다시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머니 역할을 맡았던 동료 배우가, 왕좌였던 연습실 의자가, 광대한 공간이었던 텅빈 객석이 남을 뿐이다. 허무하지만,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배우는 언제든 자기가 상상하는 장소와 상황을 불러올 수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소리와 배경들을 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배우의 경우, 정신이상자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다양한 공간과 영역에 존재하는 “중간자”로서 배우는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며, 신과 인간을 위해, 작가와 무대를 위해, 인물과 관객을 위해 자신을 확장해 나아가야만 한다. (이후 계속)

twitter facebook google+
834개 (11/70페이지)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관리자
6500
2022.03.25
(주)문화아이콘
1209
2017.03.17
가천대학교 평생교육원
1163
2017.01.13
한국영상대 연기과
1126
201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