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역할을 이해하기! (1) - 임주현 교수

임주현(비회원)님 | 2013.09.12 12:45 | 조회 1598

2013. 9. 9.

 

역할을 이해하기! (1)

(* 연속게재)

 

서울종합예술학교 연기예술학부

방송연예과 전임교수 임 주 현

 

얼마 전 한 학생이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길에서 본 한 할아버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이 학생이 매일 지나는 길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데, 매일 교회를 다니라고 외치신단다. 학생의 불만은, 그냥 조용히 교회를 다니라고 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소리를 지르시며, 오가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냐는 것이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격리해야하는 거 아니냐며, 더운 날씨에 대한 화풀이를 그 할아버지에게 하는 것 같았다. 주변 친구들은 맞다며, 자신들이 보았던 이상한 인물들에 대해 비웃음과 농담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필자는 그 학생에게 그 할아버지가 왜 그런 것일까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별 관심없다는 냉랭한 반응이었다.

그 노인이 그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무언가 큰 사건에 봉착하여 오갈 길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까스로 그만의 “하나님”을 만났고, 그 사건을 이겨낼 수 있는 대신 십자가를 널리 알리겠다고 약속을 했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손가락질 보다 더욱 중요한 “십자가 전파”라는 목표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매일 그 길에 서서 큰 소리로 듣지도 않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 큰 사건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라던가, 본인의 건강 또는 재산 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사실은 어떤 사건도 없이 그냥 그렇게 길 위에 서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의 요지는 그 노인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그 노인이 왜 그런지를 “그 노인의 입장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수많은 인물들을 만날 것이다. 다양한 TV 드라마와 영화, 또는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고전 희곡들을 살펴보자. 과연 어느 누가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의 삶을 살았는가? 물론 평범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작품 속에서 어마어마한 사건을 겪게 된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을 우리의 역할들은 항상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결정하고, 해결해나간다. 역할은 우리에게 순순히 납득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진 않는다. 물론 대부분의 해답은 대본에 있지만, 작품을 받기 이전까지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 주변에는 각자 히스토리를 갖는 수많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나에게 소중하건 그렇지 않건 모든 인간은 살아온 나름의 역사를 갖는다. 지하철과 서점, 학교, 길거리에 살아 숨쉬는 모든 사람들, 우리는 그 수많은 역사 속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회의 일원이자, 관찰자이다. 배우에게 관찰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어떠한 인물을 잘 흉내 내기 위함 보다는 그 인물이 그 행위를 왜 하는지를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역할에 대한 이해”야 말로 배우에게 있어 역할을 표현해내기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 작가에 의해 가공된 역할 역시 일상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들어 현실을 바라보고, 살아 숨쉬는 모든 인물에 대해 열린 시각과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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