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연기란 무엇인가? (3)

임주현(비회원)님 | 2013.06.11 18:18 | 조회 1555

연기란 무엇인가? (3)

(* 연속게재)

서울종합예술학교 방송영화예술학부

방송연예과 전임교수 임 주 현

 

그러한 배우들은 판이 벌어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운명을 갖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판을 벌이는 배우들이 있긴 하지만, 주로 배우는 벌여지는 판에 부름을 받아 공연하는 형태로 본인의 직업을 행한다.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며 댓가를 받아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보며 기뻐하고 슬퍼할 군중들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때문에 군중들이 모여있고 원한다면 그는 움직여야 한다. 로마시대에는 황제를 위해, 중세유럽시대에는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 르네상스 이후에는 귀족과 왕족을 위해, 산업혁명 이후에는 브루주아를 위해, 독재정치 시절에는 국가와 원수를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위해 이들은 얼굴에 분을 칠하고, 왕관을 쓰고, 의상을 입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일상에서 상처받고, 답답해하며, 웃음과 한탄을 갈망하는 무리들을 위해, 배우라는 직업의 사람들은 달려간다. 작업의 시작이다. 그는 분장을 하며, 무대 위에 서서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울고, 웃고, 움직인다. 그의 손짓 하나 숨소리 하나에 군중들은 집중한다.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 없지만, 눈을 찡그려서는 안된다. 조명 너머에 있는 군중들을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빛을 가려서는 안된다. 그가 있는 곳은 밝지만, 그가 바라보는 곳은 어둡다. 밝은 조명 반대편의 군중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웃고 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박수갈채를 선사하고 각자의 정해진 길로 사라진다.

군중들로 꽉 차있던 극장은 어느 새 적막만이 남았다. 모두가 떠나간 빈 공간에 배우는 서 있다. 그는 입고 있던 역할이라는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 의상을 벗고, 거울 앞에 앉아 분장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일상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오늘의 작업이 끝났다. 고요하다. 그리고 외롭다. 더 이상 그가 쓰고 있던 왕관은 왕의 관이 아니다. 소품실 한 켠을 메우는 소품 중 하나일 뿐이며, 주권은 없다. 미친 듯이 날 뛰던, 밝게 웃던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쩌면 이러한 공허함으로 인해 배우들 중에 애주가가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 날의 공연을 위해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휴식을 취하는 군중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므로 기상시간이 다르다. 일상의 시간과 배우들의 시간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할 때 쯤, 배우들의 작업은 시작된다. 장기 공연일 경우(물론 단기공연도 연습기간을 포함하지만), 그들은 매일 저녁 8시 반에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9시에는 등장을 위해 소대에 대기해야 하고, 9시 20분에는 칼을 들고 상대를 위협해야 한다. 그리고 10시, 박수갈채와 환호 속에 웃으며 커튼 콜을 해낸다.

극장 밖 배우들은 각자의 갈 길을 향해 또 길을 떠난다. 다음에 입을 옷은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옷을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할이라는 옷을...... 군중 앞에서의 화려한 모습, 열광하는 환호성에 비해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아내와 식솔들이 기다리고 있고, 공허함과 불확실한 미래라는 짐을 매고 돌아간다. (이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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