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보아… 동방신기… ‘비트’로 중무장, 팬들 앞에 다가서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심금을 울리는 가사로 히트곡이 만들어지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리듬을 쪼개는 색다른 비트로 차별화하는 게 트렌드다. 지난해부터 국내 가요계에 불기 시작한 일렉트로니카 열풍이 비트 부활의 서곡(序曲)을 알렸다면 올 하반기에는 서태지, 보아 등이 잇따라 색다른 비트를 내세워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 서태지, 보아, 동방신기… 멜로디 지고 비트가 뜬다

미국 진출을 선언한 보아는 얼마 전 미국에서 선보일 타이틀곡인 ‘이트 유 업(Eat you up)’을 공개했다. ‘이트 유 업’은 강한 비트가 인상적인 힙합 스타일의 댄스곡. 미국의 작곡팀인 ‘레미&트롤센’이 지은 이 곡은 엇박자의 강한 비트를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리버스 비트(Reverse Beat)’를 표방했다. 선주문만 30만 장을 기록한 동방신기 4집의 타이틀곡 ‘주문’도 이들이 만든 ‘리버스 비트’ 장르다.

작곡가 박근태 씨는 “예전엔 멜로디가 기승전결로 전개되며 곡 전체에 완결성을 주었다면 요즘엔 곡 몇 마디에 반복적으로 배치돼 강한 효과를 주는 역할로 축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7개월 만에 컴백한 서태지의 싱글 음반 ‘아토모스 파트 모아이’는 자연의 소리를 잘게 부수는 ‘네이처 파운드(Nature Pound)’라는 장르를 내세웠다. ‘2PM’ ‘원더걸스’ 등의 음악도 강렬한 비트 위에 반복되는 멜로디 라인을 얹었다.

미국 시장에서도 비트를 내세운 음악이 유행을 타고 있다. 미국 프로듀서인 팀벌랜드의 ‘비트 쪼개기’가 대중적인 흥행을 거둔 뒤 최근 팝시장은 힙합 중에서도 미 남부 계열의 거친 비트를 특징으로 하는 ‘더티 사우스’류의 곡들이 휩쓸고 있다. 한국에서 더티 사우스는 이전부터 일부 힙합 클럽에 유입돼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가요계에도 여러 가지로 변형되고 있다.

○ ‘비트 제너레이션’과 비트 열풍

노래의 박자를 맞춰 주는 요소에 불과했던 비트를 재발견하게 된 데에는 좋은 멜로디가 고갈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도 “나올 만한 (히트) 멜로디는 다 나왔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악기를 합성해 연주하는 신시사이저에 익숙한 뮤지션들의 작곡 방식도 기계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비트를 뽑아내는 데 수월하다. 곡 작업 방식이 음악의 형식까지 바꾸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비트의 부활을 이끄는 데는 수용자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클럽 문화에 익숙한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등장은 멜로디 대신 비트 위주의 음악이 뿌리 내리는 데 영향을 끼쳤다.

음악평론가 배순탁 씨는 “비트가 주가 되는 음악은 세대별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린다”며 “1990년대 후반부터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강한 비트의 음악에 단련된 10, 20대 젊은 사람들이 대중음악의 주 소비층으로 떠오르며 비트 우위의 음악도 대중성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음악을 귀가 아닌 몸으로 부딪힌 경험이 많은 ‘비트 세대’들은 음악을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데 익숙하다는 것. 멜로디가 ‘감성’을 건드린다면 비트가 주가 되는 음악은 ‘감각’을 자극하는 측면이 강하다.

음악 웹진 ‘리듬온’의 강일권 편집장은 “좋은 멜로디는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반면 시간이 지나면 질리기가 쉽다. 하지만 비트 중심의 음악은 감상용으로 쉽게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적은 반면 한 번 빠지면 중독성이 강하다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까닭에 단순하고 명쾌한 비트의 반복이 복잡한 걸 기피하는 ‘쿨’한 세대의 음악 소비 방식과 부합한다는 의견도 있다. CD플레이어나 라디오를 통한 음악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휴대전화 벨소리, 블로그 음악 등으로 음악을 접하며 음악이 배경음악이나 부속품으로 전락한 것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